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작성자
불꽃의 기사
작성일
2022-03-05 23:43
조회
571
시끌벅적하던 혁명갤러리에
사람들이 뜸하니까
어렸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비슷한 일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지만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혼자 헤메인 일이 있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70년대말)는 항상 교실이 부족하였다.
1, 2학년은 당연히 2부제 수업이고
학교 구석 구석 마다 교실이 들어설 수 있는 빈공간은 모두 교실같은 가건물들이 세워졌다.
(6학년까지 자그마치 4000명)

그중 4학년 13반이 우리반이었다.
신축교사 제일 윗층인 4층 맨구석에 있는 음악실을 지나면
옥상으로 나가서 있는 가건물이 우리반이었다.
(아마 원래는 공사인부들의 숙소였던듯 함)
어린 나이에 올라 가기엔 상당히 부담이 되는 높은 곳에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이제 막 교대를 나온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청년이었는데
한마디로 정말 무서웠다.
숙제를 안해가거나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면 인정사정이 없었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는 것은 예사였다.

그리고 일처리가 매우 꼼꼼하셨다.
매일 집에 가서 그날 공부한 내용을 기록한 종이를 다음날 제출하게 했는데
(우리반은 항상 반평균 톱이었다)
서로 숙제한 것을 빌려주는 것을 막기 위하여
누런 갱지(A4가 아니고 자그마치 B4다)에 도장을 찍어서 한명당 한장씩만 주셨다.

반으로 접어서 가운데 선을 긋고 앞 뒤로 빽빽하게
공부(?)를 해야 했다.
조금만 빈 공간이 있거나(정 안되면 다보탑 그림이나 지도라도 그려 넣어야 했다)
같은 종이에서 내용이 중복되면
가혹한 처벌을 면할 수가 없었다.

초여름에 6교시까지 수업이 있은 날에 집으로 왔는데
도장 찍힌 갱지가 없는 것이엇다.
원래는 집에 갈 때 종이를 나눠주시는데
그날 따라 점심시간에 나누어준 것을 책상 안에 넣고 깜빡하고 온 것 같았다.

오후 4시쯤 다시 학교로 갔는데
그날 따라 흐린 날씨가 점점 깜깜해지면서
조금 지나니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어려서부터 평소에 겁이 없는 스타일이었지만
사운드효과가 있는 깜깜한 복도를 지나
헐떡거리면서 계단을 올라가다보니까
등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아 바로 그 문제의 음악실~~
음악실 앞 벽에는 무서운 아저씨들의 초상화가 있엇는데
헨델, 베토벤, 멘델스존, 슈베르트 기타 등등
음악하는 인간들은 왜 다 저따위로 생겼을까?



창밖에서 번적번쩍하니까
무서운 아저씨들이 나를 보고 막 웃는 것 같았다.
특히 '바하' 이놈이 악질 중에 악질이었는데(아래 사진 참조/솔직히 지금은 동네복권가게 아저씨로도 보인다)
지금도 사회생활하면서 가끔씩 안좋은 일이 있으면 꿈에 나와서
나에게 인생 충고를 하곤 한다.



최대한 벽을 쳐다보지 않고
옥상을 향해 달렸다.
교실 문을 열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이 간단한 것을 왜 생각 못했을까).

그간의 노력과
내일 있을 체벌의 공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게다가 공포의 음악실 앞을 다시 지나야 한다니 상황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실은 비도 좀 많이 맞았다.

그냥 눈을 감고 복도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실제 시간은 1, 2초 정도일듯)
무언가에 부딪히면서 그대로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바하, 이 씨발 새끼~~~'(딱 요렇게 이야기 햇다)

고개를 들어보니 담임선생님이 산악처럼 버티고 서 계셨다.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으나
내 모습을 보고는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미 아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도 아마 교실에 무언가를 깜빡 잊고 오신 것 같았다.

같이 교실로 가서
나는 시험지를, 선생님도 무언가를 챙겨서
같이 교실을 나왔다.
둘이 손을 잡고 음악실 앞 복도를 지났다.
너무 무서워서 손을 잡는 것을 도저히 사양할 수가 없었다(내 인생 최대의 흑역사다).

나중에 우산을 같이 쓰고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담임선생님을 욕하지 않았다.

한해만 근무하시고 군대를 가셨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없는 학교가 공포영화의 주된 장소가 되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요즘 혁명갤러리에 사람이 뜸하니까
어렸을 적의 빈교실이 생각난다.
어린 나의 공포심을 없애주신 무서웠던 담임선생님이 지금으로 치면 아마 황장수소장님이셨던 것 같다.
다시 때가 오면 혁명갤러리도 예전과 같이 활기를 찾으리라 생각한다.

혁명 21화이팅! 앵그리블루 만세!! 선구자 황장수 만만세!!!
전체 5

  • 2022-03-06 08:51

    불꽃의 기사님 수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음악선생님 생각이 문득나네요 얼굴 작곡하신 신귀복선생님 별명이 복귀신 이셨는데 제 이름은 신귀운 저는 당시 운귀신이란 별명으로 제노래 저도 못들어봤는데 노래 못한다고 출석부 모퉁이로 머리 편한날이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서포13조.14조가 좋아요.

    www.r21party.com-20220305_234812.jpg

    첨부파일 : www.r21party.com--1_240x428.mp4


    • 2022-03-08 00:05

      첨부파일보니 저 때가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듯하네요^^


  • 2022-03-06 08:04

    기사님 옛날야기 잘 보았습니다 저를 과거로 데려다주는 듯하네요 감사합니다


  • 2022-03-08 00:03

    기사님 옛이야기 덕분에 갤러리가 다시 북적이는 느낌입니다^^
    옛날 이야기도 너무 재미있구요...^^^


  • 2022-03-08 12:19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좋습니다. 옛날이야기도 듣고요 갤러리가 다시 활력을 찾는듯 합니다.


전체 3,584
번호 썸네일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필독] 사진을 올릴 때 참고해주세요
[필독] 사진을 올릴 때 참고해주세요
[필독] 사진을 올릴 때 참고해주세요 (5)
혁명21 | 2021.09.08 | 추천 0 | 조회 34661
혁명21 2021.09.08 0 34661
공지사항 [필독] 혁명갤러리 게시판 사용방법
[필독] 혁명갤러리 게시판 사용방법
[필독] 혁명갤러리 게시판 사용방법 (14)
혁명21 | 2021.07.08 | 추천 0 | 조회 38785
혁명21 2021.07.08 0 38785
3496 424법정
424법정
424법정 (3)
무지개 | 2022.07.07 | 추천 0 | 조회 639
무지개 2022.07.07 0 639
3495 천안 궁 설렁탕 번개팅
천안 궁 설렁탕 번개팅
천안 궁 설렁탕 번개팅 (3)
무지개 | 2022.06.28 | 추천 0 | 조회 730
무지개 2022.06.28 0 730
3494 천안 궁 설렁탕 번개팅
천안 궁 설렁탕 번개팅
천안 궁 설렁탕 번개팅
번개 | 2022.06.22 | 추천 0 | 조회 664
번개 2022.06.22 0 664
3493 혁명21 헌법재판소 규탄집회
혁명21 헌법재판소 규탄집회
혁명21 헌법재판소 규탄집회 (12)
무지개 | 2022.06.10 | 추천 0 | 조회 763
무지개 2022.06.10 0 763
3492 6월9일 집회_05
6월9일 집회_05
6월9일 집회_05 (3)
용하 | 2022.06.10 | 추천 0 | 조회 646
용하 2022.06.10 0 646
3491 6월9일_집회_04
6월9일_집회_04
6월9일_집회_04 (3)
용하 | 2022.06.10 | 추천 0 | 조회 644
용하 2022.06.10 0 644
3490 6월9일 집회_03
6월9일 집회_03
6월9일 집회_03 (2)
용하 | 2022.06.10 | 추천 0 | 조회 612
용하 2022.06.10 0 612
3489 6월9일 집회_02
6월9일 집회_02
6월9일 집회_02 (2)
용하 | 2022.06.10 | 추천 0 | 조회 621
용하 2022.06.10 0 621
3488 6월9일 집회
6월9일 집회
6월9일 집회 (6)
용하 | 2022.06.10 | 추천 0 | 조회 613
용하 2022.06.10 0 613
3487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4)
불꽃의 기사 | 2022.06.09 | 추천 0 | 조회 585
불꽃의 기사 2022.06.09 0 585
3486 부산 영도구의윈 김재상후보 선거운동 지원2
부산 영도구의윈 김재상후보 선거운동 지원2
부산 영도구의윈 김재상후보 선거운동 지원2 (5)
민승일 | 2022.05.30 | 추천 0 | 조회 668
민승일 2022.05.30 0 668
3485 부산 영도구의윈 김재상후보 선거운동 지원
부산 영도구의윈 김재상후보 선거운동 지원
부산 영도구의윈 김재상후보 선거운동 지원 (2)
민승일 | 2022.05.30 | 추천 0 | 조회 662
민승일 2022.05.30 0 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