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폰네소스 전쟁사

작성자
권오근
작성일
2023-02-03 21:01
조회
45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저자 :  투퀴디데스

                                                 

이 책은 그리스 내전을 다룬 역사서이자 국제정치학의  전설이 된 책이다   

                                                      투퀴디데스는   아테네 명문가 출신으로  전쟁중 장군으로 종군했다가 암피폴리스전투 임무 실패로 아테네에서 추방  당했다 이후 20 년간  스파르타에서  살며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BC431 년부터 404년 까지의  27 년  동안의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내전이며 이 책은  전쟁 이전 역사와  전쟁  시작부터 20 년간(BC411 )의 기록을 담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  후 재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아테네는 에게해의 섬과 연안 지역을 엮어 델로스동맹을 만들었다 이로써 전부터 존재하던 스파르타를 맹주로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대립하게  되었다  두 동맹 사이의 대립과 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 결국BC431 년 스파르타 동맹국 테베가  아테네 동맹국  플라타이를  공격한 사건을 계기로 전면적 내전으로  비화된다  전쟁기간중 7 년의 휴전기를 포함해  27년  동안 거듭된 내전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투퀴디데스 는  책 서두에서 자신의 역사기술  방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각각의 인물이 전쟁 직전이나 전쟁중에 발언한 연설에 관해 말하자면  직접  들었던 간접 들었던  나로서는 정확히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실제 발언의 전체적인 의미를 되도록 훼손하지  않으면서 연설자로하여금  그때그때 상황이 요구했음직한  발언을 하게했다  그리고 전쟁중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말하자면 나는 우연히  주워들은 대로 또는 내 의견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제시된 증거에 따라 내가 기술한 대로 과거사를  판단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것이다(  가장 확실한 증거에 힘입어 고대사를 나름대로 충분히 규명했기 때문에 ) 그리고 앞으로  어느 누구도 왜 그리스인들  사이에 이런 전쟁이  일어 났는지  묻지 않도록,  나는 그들이 평화조약을  파기하게  된 원인과 쟁점을  먼저 기술하겠다 그러면서  전쟁의 원인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말하자면 아테네의 세력 신장이 스파르타인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라고,^

펠로폰네소스  전쟁발단   

                                                                         BC477년에  페르시아 전쟁을 마무리하고 향후의 침략에  대비하자는 뜻에서 수립 된 델로스 동맹은 아테네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동맹 회원국들이 납부하는 기금은 아테네가 유사시에 사실상  사금고 처럼 쓸 수 있었고 아테네  자체의  해군력을  강화하게  된다  특히 해상로가 차단되면  생존이 어려워지는 작은 섬나라들은 아테네에 전적으로 복종할 수 밖에  없었고,  아테네는 이런 무력과 경제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고전문명을 꽃피우는  한편 페르시아 전쟁  직전 기틀을 잡았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처럼 아테네가 그리스 세계의  유레없는 패권국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해군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후원한다는  점은 스파르타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긴장시켰다 그래도 두 나라의 대결은 서로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생각에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BC446 년에 평화조약을 맺고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에  간섭하지  않으며 스파르타도 델로스 동맹 체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럼에도 두 나라 사이에 소규모의  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직접적인 전쟁이 벌어지게 된 계기는  비교적 사소한 제3자들끼리의  분쟁에서  비롯되었다  기원전 436년 아드리아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에피담노스에서 분쟁이 발생한다 민주파가 과두파를 내쫓고  정권을 잡았는데  과두파들이 異민족과  함께  에피담노스를 공략했다  다급해진 민주파는 母 도시인  케르키라에 도움을 청했는데  과두제 체제였던 케르키라가 거부하자 코린토스로 찾아간다 코린토스는 본래 그들의 식민 도시였으나  현재는 라이벌 관계인 케르키라를 견제할  목적에서 원조를 받아들였다  여기에 케르키라가 반발하면서  에피담노스  내전은 어느새 코린토스와 케르키라  분쟁으로 비화되었다 코린토스는  해군력 강화에 온 힘을  기울여 케르키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이에 두려워진 케르키라는  아테네에 도움을 청한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일원인 코린토스를 적대시하는 일이 꺼려졌지만 해군국끼리  힘을 합쳐야  하며 케르키라는  지정학적으로  펠로폰네소스를 견제하기에   좋은 위치라는 설득에  평화조약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원조  하기로 결정한다 케르키라에  원군을 파견하되  코린토스를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러나 이는 코린토스의 반발을 가져왔고,  아테네는 코린토스를 압박하면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면서 코린토스의 식민도시이자 아테네의 동맹국이었던 포티다이아에  코린토스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한다  그러나 포티다이아는 이를 거부하고 아테네와의 동맹관계를 끊는 한편 스파르타에 도움을 요청하게되고,  코린토스를  후원한 앙갚음으로 아테네의 해상봉쇄를  당하고 있던 메가리도 스파르타를 애타게 찾았다  이렇게  해서 작은 섬나라 에피담노스의 내전이 코린토스  케르키라 분쟁으로 확대되고  다시 아테네와 코린토스  분쟁으로  그리고  아테네 스파르타  대결로 확대된다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와의 전쟁은 시간  문제라고 여기던터라  케르키라가 막강한 해군력과 함께  코린토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케르키라는  이태리 시칠리아로 건너가는  해안 항로의 요충지  였기 때문이다  코린토스는  즉각 동맹국  회의를 소집하고 스파르타에 사절단을  파견한다 이에 각 도시 사절단은 아테네가 조약을 위반하고 펠로폰네소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성토한다 그리고 코린토스  대표단은 이렇게 말을 한다

 

스파르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와 사회제도를 과신한  나머지 우리 동맹국이 무슨 의견을 개진해도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누가 자유를 빼앗겼다면  그것은 자유를  빼앗는  자보다는 그러지 못하게 막을 힘이 있으면서도 수수방관  하는 자 탓이라고 한다  그리고 스파르타는 주춤거리는데  아테네는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은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고 믿지만  여러분은 집을 비우면 가진 것 조차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평화란 옳은 일을 위해  사용하되  불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보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고 스파르타에게 불평을 토로했다

 

그때 스파르타에 파견된   아테네인들은 동맹국들과  논쟁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아테네가 우리에게 맡긴 소임을 다하기 위해  왔다고  하면서 아테네의  제국의  논리를 이야기 한다

우리  아테네는페르시아 전쟁때 과감히 도시를 버리고 재산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남은 동맹국의 공동 이익을 외면하거나 사방으로 흩어져  동맹국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대신 위험에  맞서기  위해 함선에 올랐으며( 살라미스 해전) 여러분이 우리를 도우러  미리 오지  않은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용기와  결단과 지혜를  보여주었거늘 그런 우리가 지금과 같은  제국을  통치하기로  그 때문에 그리스인들에게 이처럼 심한 미움을 받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우리가 그와 같은 제국을 획득한 것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페르시아군의  잔존 부대에  맞서 끝까지  싸우려하지  않자 동맹국들이 자진하여 찾아와  우리더러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보니 우리는 제국을  현재  상태로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첫째는 두려움이 ,  다음에는  체면이,  끝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다

힘으로  재산을 늘릴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정의의 논리  때문에 이익을 포기한 사람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다  또 우리가 제국의 확장  과정에서 처음부터 법을 철폐하고 공공연히 우리의 이익을 추구했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분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약자가 강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에게 예속된  자에게는  언제나 현재가 가장 가혹하다고 느끼니까      ( 이  제국의 논리는 부시 정권이 이라크 침공의 당위성을  제기하게 된 논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롭고  현명하기로 소문난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가 이야기 한다

우리더러  느리고 꾸물댄다고 피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준비하지않은  채로  전쟁을 치른다면   성급하게 시작한 탓에  마무리만 늦어질  수 있다 느림은 신중한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오직 우리만이 성공했을때 오만하지 않고 역경에  처했을  때 굴복하지 않았다  우리를 용감한 전사이자 훌륭한 조언자로 만들어주는 것은 규율이다  우리는 쓸데없는 기교에  너무 능하여 적의 작전을  탁월한 언변으로  비판하면서도 행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도록 훈련  받지 않았다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적의 계획이 훌륭하다고 가정하고 행동으로 준비한다 또한 적이 실수할 가능성보다는 우리 자신의 안전한 예방책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인간은 서로 큰 차이가  없으면 가장 엄격한 훈련을  받은 자가 가장 강한  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동맹국  회의 표결 결과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도출 한다  스파르타인들이 이 처럼 평화조약이 깨졌으니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표결한 이유는  동맹국의 말에  설득되어서라기  보다는 그리스 대부분이 아테네의 통제 아래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아테네의 세력이 더욱 더 커지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투퀴디데스는  말하고 있다

이에 이테네에서도 민회를 열어 전쟁을 할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당시 아테녜의  제일인자로서  말과 행동으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던 페리클래스에 대해 투퀴디데스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페리클래스는 명망과 판단력을 겸비한 실력자이다  청렴결백했기에 대중을 마음대로 주물렀으며 대중이 그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대중을 이끌었다 그는 대중에게 아첨할 필요가 없었고 그는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어  대중에게 화를 내며 그들이 한 말을 반박할  수 있었다 그는 대중이 지나칠만큼 자신을 과신하면 충격적인 발언으로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낙담하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곤  했다 라고 그를 묘사하고 있다

페페클래스는 민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전쟁의 당위성을 이야기  한다

 

아테네인이여  스파르타인들에게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의견은  늘 변함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전쟁을  하기로 결심할 태  마음 다르고 실제로 전쟁할 때 마음  다르며  상황에  따라 마음이 바뀐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럼에도 나는 종전과  다름없는  조언을  드립니다 여러분 가운데 내 말에 찬성하는 이들은 우리의 공동결의가 실패해도 당연히 이를 지지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때는  우리 계획이 성공해도 자신이 이에 기여했다고 자부해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  실제 결과는 사람의 마음 속  못지않게 변덕스러우며 그래서 우리는 예상이 빗나가면 운명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자책감을  미음에서  지우시기 바랍니다   사소한 일이 여러분의 결심과 의도 전체를 떠보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양보하면 그들은 우리가 겁이나서 양보하는 줄 알고 당장 더 큰 요구를 해  올 것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하면  그들도 여러분을 대등하게  대하는 편이 좋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것이다

그리고 국가든 개인이든 가장 큰 위험을 통해 가장 큰 영광을  얻는다는 것을 ,  우리 선조가 페르시아인들에게 대항하였을때  그분들에게는 지금 우리와  가진  것과 같은 물자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가진 것도 버리고 운보다는 지혜로,  힘보다는 용기로, 페르시아인들을  물리쳐 우리 도시의 오늘이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조보다 못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너 우리는 어떻게든  적을 물리쳐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도시를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페리클래스는 일단 전쟁을 한다면 아테네는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까닭은 아테네에게는 사실 최강의  해군력이 있었고 델로스  동맹기금에 , 암피폴리스의 은광이 있는데다 해상 교통로를 통제할  힘이 있는 아테네에 비해  적의 자금력은 얼마 못 버틸거라고 예상했으며  스파르타의 주변  섬나라들은 아테네의 해상봉쇄와 민주화  선동의 결과 아테네 쪽으로 돌아  설 것이며 그러면 스파르타를 포위하여 압박할 수  있다  그리고  최강 육군력을 가진 스파르타와  육지에서 정면 대결을 펼치는 일은 자제해야 하며  그래서 아티카의  농민들을 모두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을 잇는 성벽  안으로 피신시키고  농성하면서 해군력으로 승부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육지에서 스파르타에게  결정타를 가할 수 없는 이상 전쟁은 장기화될 수 밖에 없었고  아무리 아테네의 자금력이 풍부  했어도  전쟁 장기화에는  대책이없었다

 

아르키다모스  전쟁과 휴전

 

BC 431년 3월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테베가  델로스 동맹의  플라타이아를  공격하며 시작된   전쟁의   첫국면은  BC 421년까지 이어졌으며  스파르타 왕의 이름을  따라  아르키다모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때에 스파르타는 아테네  땅  아티카를  공략했고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직접 공격을 가하기보단 스파르타의 편을 드는 도시들 메가라,   포티디이아, 이텔레네  등을  해군력을  앞세워 공략했다

아테네는 농성전술을 택하여 최강의 육군을 자랑하는  스파르타와 정면으로  싸우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하였으나 개전 후 얼마되지  않아 아테네에 역병이 돌아 많은 수의 인명 손실을 보았고 이때에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래스도 병사하게 된다                                                                        저자 투퀴디데스는 역병을 겪고 있던 아테네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아테네는 역병탓에 무법천지가 되기  시작했다  운세가 돌변하여 부자들이 갑자기 죽고 전에는 무일푼이던  자들이 그들의 재산을  물려 받은 것을 보고  이제 사람들은 전에는 은폐하고  하던 쾌락에 공공연하게 탐닉하였고 목숨도 재물도 덧 없는 것으로 보고 가진 돈을 향락에  재빨리 써버리는 것이 옳다고 여겼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고상한 목표를  위해 사서 고생을  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당장의 쾌락과 그것에 이바지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고상하고 유용하다는 것이  중론이되었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도 무차별적으로 죽는 것을 보자 신을 경배하든 하지않든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개전 후  첫 전사자 추도식에서  페리클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테네인들은 여기 이 분들을 본받아 ,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심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망설이지 마십시오   죽음조차 불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란 더 나아갈  가망이 전혀 없는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을 경우 운명이 역전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가장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 자신의 비겁함으로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스파르타에  의하여 국토가 두번이나 유린 당하고  전쟁과 역병에 동시에 시달리자 아테네인들은 생각이 바뀌게 된다 그들은 전쟁을 하도록 그들을 설득했다고  페리클래스를  비난하는가 하며 자기들이 당한 불행을 모두 그의 탓으로  돌렸다 이에 페리클래스는   그들 앞에  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개인이 아무리 잘나간다 해도  국가가 망하면  그도 총체적인 파국에 휩쓸리고  말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안전하다면 개인은  불행을 당해도 회복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이렇듯 국가는 개인의 모든 고통을  감당할 수 있어도 개인은 국가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 당연히  국가를 옹호해야   한다 당신들은 내게 화를 내지만  나야말로  누구  못지않게  무엇이 필요한지  볼 수 있는 식견이 있고  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조국을  사랑하고 돈에 초연한 사람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식견은 있으나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아예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 두가지 자질을 갖고 있으나  애국심이 없다면  아마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애국이 있다 해도 뇌물에 약하다면 이 한가지를 위해 무엇이든 다 팔아버릴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내가 이런 자질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낫다고  믿고 전쟁을 하자는 내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라면  지금와서 잘못했다고 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여러분들이다 피해를 보지 않을 때는 여러분이 내 조언을 따르다가 사정이 나빠지자 여러분의 행동을 후회하기에 드리는 말이다   당신들은 사기가 떨어진 만큼 내 정책이 잘못된 것으로 보일거다  무지와 요행의 혼합물인 자만심은 겁쟁이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우월감은 우리처럼 자신의 적보다  우월하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기질 수 있다   

 

페리클래스는가 죽고   전쟁에 관한 그의 선견지명은 더욱 더 널리인정 받았다  왜냐하면 페리클래스는   아테네인들이 은인자중하며 함대를 증강하고  전쟁동안에는 제국을 확장하려하지 않고 도시를 위험에 빠뜨릴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모든 점에서 정반대로 했으며  개인적인 이익이나 야망에 이끌린 나머지  아테네에도   그 동맹국에도 해로운 정책을 추구했다 (  알키비아데스의 시칠리아 원정)   그런 정책은 성공하면 개인들에게 명예와 혜택을  더 가져다주고 실패하면 국가의 전쟁  수행능력을 훼손한다

                                                                                          지리하게 이어지던 전쟁은 평화조약에 가장 반대하던  두 사람  아테네의 강성지도자 클레운 과 스파르타의  장군 브라시다스가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죽자  양측은 휴전을 모색하게 된다 (  브라시다스가 휴전을 반대한 이유는 전쟁덕분에 성공하고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고 클레온이 반대한  것은  평화시에는 자신의 비행이 쉽게 드러날 것이며 자신이 남을  모함해도  전쟁중에는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    이때 스파르타의  플 레이스토아낙스와 아테네 장군 니키아스는 전쟁을  끝내는  일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니키아스는 아직 패배를  당하지 않아 존경받는  동안  자신의 행운을 보전하고 한건도 국가의 실패를 안긴적이  없는 인물로 후세에 알려지고 싶었기 때문이고 스파르타의 플레이스토아낙스는  그의 정적들의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이 휴전은 니키아스  평화조약이라 명했다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아테네

니키아스의  평화는 전투가 전혀 없는 평화는 아니었으며  단지 서로가 확전을 자제했을 뿐이었다   아테네 쪽에서 전쟁의 향방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는 모험을 시도한 때는 BC420년  그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페리클래스의 조카  미남이자 재주꾼으로 유명했던 알키비아데스였다                                시칠리아와 이태리 남부에는 그리스 폴리스의 식민지로   출발하여 이제는 거의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는 도시국가들이   모여 있었다  시칠리아 최대도시  시라쿠사는 스파르타 유민들의 도시였다  반면 세게스타는 아테네의 동맹국이었는데   친 스파르타 세리누스와 분쟁에 들어가면서  아테네에 구원을 요청한다   아테네에서는 알키비아데스를  중심으로 이번 기회에  시칠리아를  손에 넣어 스파르타의 돈줄을  끊고 전쟁  수행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진다

니키아스는 시칠리아 원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현재의 이익을  위험에  내 맡기지  말라고 조언해도  소용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그런 모험을 할 때가 아니며 여러분이   지금 추구하는  것은 손쉅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지적합니다  이미 가진 제국을 확고히 하기 전에  새 제국을 잡으려고 모험을 할 때가  아니다 그리고 시칠리아처럼 인구가 많고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은 설령 정복한다 해도 지배하기가  몹시  어렵다  정복한다 해도 지배할 수 없고 실패하면 공격하기 전보다 우리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자리에 장군으로 선출된 것을 좋아하며 무엇보다도  장군이 되기에는 아직은 너무 젊은  까닭에  이기적인 이유에서  원정을  가야 한다고  사주하는 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가 자신이 먹이는 경주마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경탄받기를  원하고   또 그런 일에는 많은 비용이  드는 까닭에  장군직에서  이익  얻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혼자 멋 부리느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또 그런 사람들은 개인의 사치를 위해 공금을 횡령한다는 점과  이번 일은 젊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서둘러 행동에 옮기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개 욕심은 실패하고 선견지명은 성공한다

 

이에 알키비아데스가 반박 연설을 한다   아테네는  가만 있으면 저절로 질이 떨어지고 그 기술도  낡아 버리는데  전쟁을 계속하다보면 그 경험이 축적되어 자신을 지키는데 익숙해질 것이다   이렇게 아테네  시민을  정치선동하면서 개인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시칠리아 원정을 감행하게 된다   그리고 대다수가 시칠리아 원정을 찬성하므로서,

  기원전 415년  134 척의 삼단노선과 5천명의 중장보병  총인원  2 만 5천의 대규모 원정군이 시칠리아로 출발했다  원정군 사령관은 알키비아데스 였으나  출발전에 있었던 헤르메스 석상 남근  파괴  사건의 범인으로 알키비아데스가 지목되면서  본국으로 소환하라는 명령을 받게되고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로  도망가고  스파르타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스파르타인들이여   청하건데 여러분의 위험한 일이나  힘든 일에는 나 알키비아데스를 이용하십시오  이렇듯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약점을  공격하도록  해서 더욱 더 아테네의 국력을  쇠락하게  만든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  왕비와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다시 한번 페르시아로 망명하고는 스파르타를 지원하지 말고 아테네와 전력이  서로 비슷하게  되어야 페르시아의 이익이라고  조언을 한다

 

시칠리아 원정은 잘 풀리지 않았으며 이듬해 데모스테네스가 2차원정군을 이끌고 합류했으나   에피폴라이  전투에서 대패하고 또 해전에서도 대패하여  육지로 퇴각하여 그들의 동맹인 세게스타로  철수하려고 하였지만  시칠리아 지형에 어둡고 지휘관의 우유부단함에   후퇴작전은 실패하고 거의 전멸하고 포로 칠천명은  채석장노예로 팔려간다  시치리아 원정 실패는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의 앞길에 암운을 드리웠다  인적 물적 심리적  피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아테네는 쇄락의   길로 접어들어 BC 404년 스파르타에 항복하고 만다

이 전쟁사를 통해 제국의 길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테미스토클래스나  페리클래스  같은 지도자가 있을  때에는   제국이 유지되지만  자기 이득에 눈이  먼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면 본인은  물론이고  나라도  쇄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올바른 지도자의 중요함은  천번 만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도  제국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페르시아 키루스 같은 지도자가 이 땅에서도 배출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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