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작성자
권오근
작성일
2023-03-05 00:31
조회
159

니코마코스  윤리학

         저자: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의를 위해  작성한 초고를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편집하여 엮은  책이다  이 윤리학의 주제는 국가공동체의 제일과제인  국민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데 있다 ,  행복은 개개인의  행복이어야  한다 개인을 떠나서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또한 사회적 존재여서  개인의 행복은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국가의 책무는 국민 개개인이 바르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하여 국민 전체를  행복하게  하는데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와 관련된  정치학의 토대로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윤리학의  탐구 주제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그의 철학적 관점은 스승과 다르다  플라톤은 본질( 이데아)과 현상을 절대적으로 분리시키는   초월적  이원논적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  안에  본질이 내재되어   있다는 내재적 이원론자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플라톤은 본질과 현상이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있기에  지금 이세상은  거짓의 세계, 허위의 세계, 우상의 세계로  바라본다 그래서   이 세상은 더 이상  탕 구할 가치가 없고 오로지 우리의 관념의 세계만  학문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은 본질에  스며들어 있고  본질이 실현되는 세상이기에  이 세계의 탐구는 본질에 대한 탐구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좋음  의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모든 기술과 학문은 물론이고 모든 행위와 이성적  선택에서  어떤 좋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서 좋음을 추구해  왔지만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도 하고 행위로부터 얻어지는  결과물을 목적으로 하기도 했다

가장 좋음을 지칭하는 명칭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하고  그것을 행복이라 부르고,  잘 살아가는  것과  잘 행하는 것을   행복이라  한다( 쾌락, 부, 명예 등)  최고의 좋음의 추구인 행복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며,  최고의  좋음으로써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족이라는  관점에서  행복은 자족적이다  자족은 그 자체가  삶을 바람직하게 만들며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는 상태,   즉 행복이다  그래서 행복은 우리의 행위의 목적이자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다  인간의 기능을  특정한 삶,  곧 영혼의 이성적  활동이나 일련의 행위라고 한다면  훌륭한 인간의 기능은 이성적 행위들을  잘 수행하는 것이고 ,  모든 기능을 수행할  때 그에 걸맞는  미덕( 탁월함/ 아레타 )을 가져야 한다 면  인간의 좋음이란  미덕에 걸맞는  영혼의 활동이며  그리고 미덕이 여러개라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완전한 미덕에 걸맞는 영혼의 활동이다

행복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미덕이나 어떤  학습 . 훈련을 통해 얻는다고 할지라도  행복은 가장 신적인  것중 하나로  보이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완전한 미덕과  평생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하루 아침에  봄이 오는 것도 아니다  사람도 하루 아침에  또는 단기간에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복이 미덕에 걸맞는 영혼의 활동이므로 미덕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행복은 영혼의 활동이고  미덕  또한  영혼의 미덕이다  영혼의 일부는 이성적  부분이고 일부는 비이성적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영혼의 비이성적   요소는  이성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식물적  부분과  이성에 부분적으로 작용하는 욕구적이고  욕망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에서 이성은 설득과 조언  질책 격려에 따라서 행동을 달리할 수 있는 이성이다

미덕도 영혼의  구분에따라  지적  미덕과 도덕적 미덕으로 나눌 수 있고  지적 미덕에는  철학적지혜   명석함  실천적지혜가 있으며  도덕적 미덕은 후히 베프는 것, 절제같은 미덕이 있다  지적 미덕은 주로 가르침으로 생기고 성장한다 따라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도덕적 미덕은 습관의 결과물이다  본성적으로  생기지도  않고 또 본성을  거슬려 생기지도 않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받아들여 습관을 통해  완성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올바른 행동을 해야 올바른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해야 절제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행동을 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성품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 성품이  결정된다

도덕적  자질들은 체력과 건강에서처럼  본성상 모자람이나 지나침에 손상된다  음식물  섭취가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건강을 해치듯이  절제나 용기  등의 미덕들도 피하면 비겁해지고 지나치면  무모해진다  쾌락도 마찬가지로  지나치면 방탕해지고  모자라면 무감각해진다  그래서 이러한 미덕들은 중용에 의해 보존된다

그러면 미덕은 어떤  마음  가짐일까?   미덕은 그리스어로 아레테이고  탁월성으로  어떤 행위를 할 때 마땅히 지켜야  하는 규범이다   미덕은 미덕을 지닌  것이 좋음 상태에 있으면서  제 기능을 잘 하게 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눈의 미덕은 눈이 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말(馬)의 미덕은 좋은 말이면서 더 잘 달리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미덕은 인간을 좋게 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제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행위나 미덕에는 지나침과 모자람  중간이 있는데  두려움 자신감 욕구 분노 고통등은 너무 많거나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도 좋은 쪽은 아니다 그래서 미덕은 중용으로 유지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이란  감정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상태로 산술적인 중간 상태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중간인 모호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정도로  마땅한 때에 마땅한 동기에서 마땅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이며 이의 실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숙고의 삶이 필요하다

모든 행위나 감정에서  중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악의, 파렴치 , 간음, 도적질, 살인등은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이지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서 중간 상태가 칭찬  받을 만하지만  거기 도달하려면 어떤 때는 지나침 쪽으로  또 어떤 때는 모자람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   중용은 산술적으로 중간으로 오해해서는 안되며  적절한 중용을 취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도움  즉 실천적  지혜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미덕은 감정과 행위와 관련있고 자발적이면  칭찬 받거나 비난을 받고 비자발적이면 용서  받거나 때로는 동정도 받는다 따라서 미덕과 관련하여 반드시 자발성과 비자발성을 구분해야 하며 이는 입법자가 상벌을 정하는데도 유용하다  비자발적행위에는  강제적행위 무지에 따른 행위가 있으며  반면에 자발적  행위는 행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으며  자발적인 것들을 알면서  하는 행위이다 또 무절제함은 욕망에 이끌린 나머지 욕망에 따른 행위를 옳은 것으로 판단하여 행하는 것이고 ,  자제력 없음은 이성의 판단에 따라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미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선택이 필요하다  이성적 선택은 미덕의 본질에 속하기에 성품을  구별해 내는 데  행위보다 더 탁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성적 선택의 대상은 오직 자기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대상으로 삼으며 그래서 이성적 선택은 수단과 더 관련이 있다 예컨데  우리가 건강해지려고  하는 것은 바램( 목적)이고  우리가 건강하게 할 행위를 하는 것은 이성적 선택이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랄 수 있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행복  그 자체는  이성적  선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이성적 선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적 선택은 숙고하는 삶이다

바램의 대상은 목적이고 숙고와 이성적  선택의 대상은  수단이며 그 행위는 합리적 선택에 따른 자발적인  것이다  따라서 미덕과 악덕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지 보잘것 없는 사람이  되는지도 우리의 책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있는 미덕을 개략적으로 살펴 보았다   미덕은 중용으로 유지되는 성품이며 자발적이고 이성이 명하는  대로 행한다

용기는 두려숨과 대담함의 중용이다 사람들은 불명예,  가난, 질병, 죽음 등 나쁜 것들을 두려워하지만  용감한 사람들은  특히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음에  관련하여  용기를 발휘한다  용감한 사람들은 고매한 죽음과 즉사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완강하게 저항하거나  고매하게 죽을 수 있는 곳에서 용감하게 행동한다

대담함에서 지나친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며 두려움에 지나친 사람은 겁장이다  또 가난이나 사랑으로 번민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려고 죽는 것은 용기있는 자가  아니라 겁장이가 하는 짓이다   힘든 것을 피하는 일은 나약함이고 힘든 것을  피해 죽는  일은 고귀함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고통을  피하려고 죽는 것이다

절제는 쾌락과 관련된 중용이다  좋아해서는 안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지나치게 즐기지 않으며  즐겁지 않아도 괴롭거나 욕구하지 않는다 즐거우면서도 건강과 몸에 좋은 것들을  올바른 방법으로 적당하게 욕구하고 재산의 허용 범위를 넘기지 않는 올바른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절제하는 사람은  이성과 조화를 이루어 당연히 욕망을 느껴야 하는 것을 당연히 그래야 하는 방법으로 당연히 그래야 할 때에  욕망을 느낀다

재물에 대한 중용은 후함이며 낭비와 인색함은 재물과 관련된 지나침과 모자람이다  명예에 대한 중용은 자부심이며 반면 모자라는 사람은  자기 가치를 과소 평가하고 우유부단하므로 고매한 행위나 사업은  물론이고 외적인 좋음도 삼간다  한편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어리석고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으로 과분한 명예를  추구한다

정의는 옳은 일을 올바르게 하고 옳은 것을  원하게하는 마음가지이며 불의란 불의한 일을  불의하게 하고 불의한 것을 원하게 하는 마음가짐이다  또 정의는 법을 지키는  것과 공평한 것이고 불의는 법을  어기는 것과 공평치 않은 것이다  정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행되는 미덕이며  가장 완벽한 미덕이다

정의는 크게 두가지로 분배적 정의와 시정적 정의로 분류하는데  그 기준은 중간 동등  비례적인  것이다  먼저 분배적  정의는 당사자들이 동등함에도  동등하지 않은 몫을,  혹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동등한 몫을  분배 받아 가면 바로 거기서 불평과 분쟁이 생겨난다 따라서 분배에 있어 정의로운 것은 가치에  따라 비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사람들의 富  권력 지위 등은 각자의 능력이나 가치에 비례해서  다르게 분배되어야 정의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정적 정의는 잘못된 배분을 올바르게  고치는 것이며 이런 시정적 정의가 있기 위해서는  사전에 상호교섭이 있어야 한다  ,  판매  구매 임대  같은 자발적  교섭이나 절도 사기 모욕 같은 비자발적 교섭이 있는데 어느  경우든 한편이 자기 몫 이상을 가져갔을  경우 더 가져간  것을 빼앗아  덜 가져간 곳에 주어야 한다는 것이 시정적 정의 핵심이다  즉 한 사람은 부정의를 행하고 다른 사람은 부정의를 당한  경우  그 손해의 차이  만큼  당사자들간의  손해와 이익을 동등하게  하는 것이며 산술적이다

긍정이나 부정을 통해 영혼을 참에 도달하게 해주는 성품은  기술, 학문적인식, 실천적지혜, 철학적지혜, 지관적지성이 있다고 하며  기술은   기술과 예술을  아울러 하는 말인데  참된 이성을  동반해서 무엇인가를  제작할 수 있는 제작적 품성상태이다 ( 건축술 조각등) 학문적 인식은  전문적인 앎,  보편적인것, 필연적으로 그런것, 증명할 수 있는 것,  다르게 있을 수 없는 것을 인식하는 것  따라서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있다   직관적 지성은 개별적인  것에 관한 설명이 있을 수 없는 개념들에  관련되는데  그 개별적인  것에 대한 지각이다   철학적 지혜는  학문적  인식중 가장 정확한 것  전체적으로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실천적  지혜는  자신에게 좋은 것  유익한  것들과 관련해서 잘 숙고하는 것이며 인간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에 관계하여 이성을 가지고 행위를  산출하는 참된 품성  상태이다  그리고 실천적지혜는 의견을  형성하는 부문의 미덕이다  또 무엇을  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 그래서 실천적 지혜는 행위 실천을 동반하여 결과에 관련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피하여야 할 품성으로   악덕, 짐승같은 품성,  자제력 없음 말하고 있다 자제력 없는 사람이란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된 후에도  여전히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며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해서 ,  감정에 사로잡혀, 또 욕망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특히 육체적  향락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선택과 사유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지나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    성급한 사람은 숙고를 하지 않아 감정에  의해 이끄린 자제력 없음이며  마음 약한 사람은 합리적 선택을  감정때문에  자신이  결정한 것에 머물지 못하는 자제력 없음이다   무절제  하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선택한 결과로  지나침을 추구하는 반면  자제력 없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는  선택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 8~9 권에서  사랑(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는 사랑이란 쌍방간에  성립하는 선의이며  서로에 대한 선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사랑이 성립한다고 본다 사랑에는 우연적인 의미에 따른  사랑 즉 좋음을  이유로 하는 사랑,  유익을  이유로 하는 사랑과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분류하고  우연적인  의미에 따른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이나 즐거움을  주는 한에서  사랑하는 것으로  이런 유익들이 사라지면 금방 해체되는 사랑이기에 열등한 사람들이 맺는 사랑이다   반면 가장 완벽한  사랑은 서로가 잘되기를 바라며 .이러한 사랑은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유지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좋은 것을  모두 갖고 있다해도  친구가 없다면  과연 행복할까  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참된 우정이란  친구를 위해 좋은 것을 바라는 것으로 필요에  의해 사귀는 이기적 관계가 아닌  조건 없이 주는 이타적 관계를 말한다  그러면서 친구는  또 다른 니다 라고  말한다

결론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  최고의 덕은  그리스어로  에우다이모니아,  행복이고 행복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영혼의 탁월성을 발휘할 때이며 그것이 바로 철학적 지혜를 발휘하여 사유하는 삶,  관조하는 삶이며  신을 닮는  삶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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